관리자 2024-31-1
"매달 한국인 30명은 수술 받으러 옵니다. 1월에도 거의 매일 한국인 수술예약이 잡혀있어요." 태국으로 '의료관광'을 떠나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태국을 찾는 외국인환자를 한국으로 유인해 '아시아 의료허브'가 되겠다던 한국 의료시장이 태국의 저가공세에 밀려 내국인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한국 절반 가격에 수술은 물론 호텔숙박부터 관광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1일 태국 방콕에 위치한 성형전문 '얀희종합병원' 한국전용 번호로 전화를 걸자 한국인 남자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가슴확대수술을 받고 싶다고 하자 가격부터 체류기간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최신 보형물 '코헤시브겔' 삽입 가슴확대수술을 7박8일 간 체류하며 받는데 한국 강남의 절반 가격인 330만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도 한국인 6명이 입원해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이 전원 태국인이라는 말에 "의료수준이 믿을만하냐"고 묻자, "세계보건기구 의료수준 조사에서 태국이 한국을 앞섰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 의료수준 조사에서 태국은 47위로 한국(58위)을 11계단 앞섰다. 미국 비영리기구 국제의료기관평가(JCI)도 우리나라보다 수년 먼저 도입했다. 이 병원은 성전환 수술과 성형 수술 등으로 태국 내 대표적인 의료관광 병원이다. 이 병원에만 매달 30여명의 한국여성이 성형수술을 받으러 온다고 한다. 주걱턱 교정 수술이나 쌍커풀, 코수술의 경우 한국의 절반에서 1/3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시사경제지 비지니스위크는 지난 2007년 태국 범룽랏 병원에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에서 40만명의 의료관광객이 방문했다고 보도할 정도로 태국의 의료관광 산업은 급성장하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아시아에서 이같은 저가공세는 쉽게 먹혀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손기술'이 월등히 앞선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 전만해도 태국과 홍콩의 유명 여배우들이 한국으로 성형수술을 받으러 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류열풍에 연예인 원정성형까지 이어지며 일반인들도 많이 찾았다. 하지만 경험을 쌓은 태국 현지 의료진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값싼 자국 내에서 해결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인 성형 관광객의 '역유출'까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손기술'만 믿고 지금까지 너무 정체돼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남 모 성형외과 원장은 "태국에서 수술받은 후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기술격차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태국 등의 경우 의사 인건비가 싸고 대자본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져 있어 우리나라가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만큼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 성형 시장이 국내 소비자들을 지켜주지 못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지만, 이같은 해외 시장으로의 의료관광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3000여 케이스 이상의 가슴 수술경험을 가졌다는 국내 한 성형외과 의사는 "비용 때문에 해외 성형 관광을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가슴 성형의 경우 수술 후 사후관리가 중요한 데 문제가 생길 경우 다시 태국으로 출국해서 하겠느냐"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통상 가슴수술 후 일어나는 구형구축이 발생해 딱딱해질 경우 해외수술 환자의 경우 사후 관리가 불가능하다"며 "실제로 태국 일부 병원에서 수술 후 문제가 생겨 국내 성형외과 전문의한테 하소연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용 성형을 원하는 사람들을 국내에 붙잡아 둘 뚜렷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의료관광 적자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는 게 현실이다. 의료서비스의 경우 서비스의 질과 가격을 놓고 소비자들이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이냐고 상품을 선택하는 기준이다. 그동안 가격에 비해 질이 떨어졌던 태국, 인도 등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의료관광국'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는 사이 한국은 각종 규제로 인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국적 컨설팅 그룹 맥킨지&컴퍼니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의료관광산업의 규모는 1000억달러(한화 약 120조원)로 추산된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태국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정부는 2012년 100만 명의 해외 환자를 유치해 30억 달러의 수입과 1만 3000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인도도 2012년 의료관광 수입이 20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이 의료관광객 유치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국내 의사들의 '손기술' 경쟁력에만 맡겨놓고 있다. 그 사이 태국 등의 저가공세에 밀려 '휘청'하고 있다.